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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 등번호 바르셀로나와 나폴리
    축구의 역사/축구 레전드 Top100 2020. 9. 2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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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시작된 세계 축구사에 기록되고 현존하는 축구 레전드 Top 100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주인공으로 펠레냐 마라도나냐 고민을 많이 했지만 3번의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가진 펠레가 첫 주인공이었고 두 번째 주인공은 월드컵 우승은 1회, 준우승 1회를 들어 올린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입니다.

    디에고 마라도나 프로필

    본명 :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나이 : 61세(1960년 10월 30일)

    국적 : 아르헨티나

    출생지 : 부에노스 아이레스

    피지컬 : 키 164cm, 체중 70kg

    국가대표 : 91경기 34골(1977년 ~ 1994년)

    등번호 : 10번

     

    선수 경력 vs 감독 경력

    마라도나는 1968년 에스텔라 로하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로스 세볼리타스(1970~1974),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유스(1975~76)를 거쳐 1976년 아르헨티노스(1976~1981), CA 보카 주니어스(1981~82) 그리고 드디어 1982년 FC바르셀로나에 입단 82년 ~ 84년 활약한다. 이후 SSC 나폴리와 세비야를 거쳐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CA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와(1995~97)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마라도나는 선수 경력뿐 아니라 감독 경력도 다양한데요. 1994년 만대요 데 코리엔테스 감독을 시작으로 라싱 클루브, 알 와슬, 알 푸자이라, 디나모 브레스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힘나시아 데 다 플라타 감독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2008년 ~ 2010년까지 아르헨티나 A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마라도나의 청소년 선수생활

    마라도나는 만 15세(1976년)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듬해 아르헨티나 A대표팀에 데뷔 일찌감치 그 천재성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아르헨티나가 최초의 월드컵을 우승하던(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에는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인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처럼 큰 대회에 어린 선수가 견뎌내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극받은 마라도나는 고군분투하여 197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6전 전승으로 우승을 하며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요. 이후 아르헨티나는 현재까지 20세 이하 월드컵 최다 우승국(6회)으로 축구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2% 아쉬웠던 스페인 무대 vs 축구 신의 강림 이탈리아 무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1981년 데뷔 시즌 자신의 클럽축구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된 마라도나는 1982년 6월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갈아치우며 바르셀로나 해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모든 이들이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에 이목을 집중했으니 축구의 신 마라도나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일까?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와 거친 파울에 당황했고 브라질과의 라이벌전에서는 상대 선수의 파울과 집중 공격에 감저 컨트롤을 하지 못한 채 노골적인 파울로 퇴장을 당하기까지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은 멀어져 갔고 마라도나에 대한 평가 역시 미완 성형이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월드컵 이후 바르셀로나에서의 클럽생활 역시 순탄지 않았습니다. 1983년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안도니 고이코에체아(빌바오의 도살자)의 백태클로 인하여 선수생명에 위협을 받을 만큼 심각한 골절상을 입게 된다. 이후 빠른 회복으로 다시 그라운드에 나섰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축적한 부와 명예로 개성 넘치는 젊은 마라도나의 삶은 컨트롤되지 않았고 다양한 이슈를 뿌리며 말썽꾼이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이로써 두 시즌 동안 38골을 기록한 마라도나는 1984년 5월 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집단 난투극의 중심에서 발차기를 날리는 모습이 명장면으로 화자 될 만큼 스페인에서의 선수 생활은 뭔가 2% 부족하고 아쉬움이 가득했다.

     

     

    1984년 6월 마라도나는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이적료 기록을 수립하게 되면서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나폴리는 당시 직전 시즌에서 리그 11위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고 이전까지 단 한 차례의 리그 우승 경험이 없던 팀이었다. 하지만 마라도나 이적 후 첫 시즌 리그 8위로 순위를 끌어올리더니 다음 시즌 리그 3위까지 올라갔고 그 중심에는 축구의 신 마라도나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위대한 역사의 서곡에 불과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는 1987년 드디어 나폴리의 클럽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 커리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나폴리에서도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순강이었다. 이후 나폴리와 계약을 연장하고 89년 UEFA컵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 유럽 챔피언 AC밀란을 누르고 다시 한번 세리아 A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축구의 신과 멕시코 월드컵(feat. 1986 월드컵 마라도나)

    1986년은 멕시코 월드컵이 있었던 시기였다. 마라도나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우승을 위해 도전을 이어나갔다. 브라질의 펠레와 기린 샤, 바비 찰튼과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에우제비오 등 한 시대를 풍미하고 현시대에도 축구 레전드, 영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거목들도 단 한 명의 선수가 하나의 월드컵 전체와 견줄만한 대회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 마라도나는 멕시코 월드컵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일곱 경기에 출전해 다섯 골을 터트린 마라도나 그중 세 골이 축구 역사에서 최고의 드리블과 골 장면으로 꼽힐 만큼 수십 년이 흘러서도 회자되는 장면들이다. 잉글랜드와의 준준결승 신의 손 골로 잉글랜드 팬들을 분노케 했지만 몇 분 후 나온 신의 발 골은 정말 소름 돋을 만큼 엄청난 명장면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진영에서 시작된 마라도나의 드리블은 잉글랜드의 피터 비어슬리, 피터 리드, 테리 팬 위크, 테리 부처, 피터 쉴턴, 게리 스티본 스 까지 6명의 상대 선수를 차례로 무찌르며 골까지 넣으며 월드컵 역사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이후 벨기에와의 준결승에서도 상대 수비 네 명을 얼어붙게 만들며 또 하나의 명장면을 탄생 키셨다.

     

    역대 최고의 10번 마라도나

    탱탱볼처럼 통통 튀는 유니크하면서도 압도적인 드리블과 마라도나 등번호 10번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가 활약하던 1980년에는 미카엘 라우드루프, 카를로스 발데라마, 소크라티스, 베른트 슈스터, 게오르게 하지 선수뿐만 아니라 지쿠, 미셀 플라티니, 엔조 프란체스 콜리, 루드 굴리트 등 10번 플레이메이커,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전성기였다.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최고의 10번을 꼽으라면 단연 마라도나가 자리할 것이다. 특히 그의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능력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특히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며 페이스 조절과 변속 플레이는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경기장 전체를 보는 시야와 패스의 타이밍과 구질 또한 창의적이었고 정확성까지 겸비하고 있어 그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된다. 그의 드리블을 막기 위해 두 세명의 수비가 집중 마크가 들어오면 순간 빈 공간으로 위협적인 패스를 넣어주었고 반대로 수비가 공간을 미리 차단하면 엄청난 컨트롤과 볼키핑으로 집중 마크를 자신에게 유도하면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는 말 그대로 자유자재로 템포와 공간을 컨트롤하는 플레이 메이커였다. 압박축구는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만든 전술이다(AC밀란 감독. 아리고 사키)라는 발언을 했을 만큼 축구의 신 마라도나는 아직까지 우리의 머릿속 마음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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